일본, ‘겨울연가’부터 버추얼 아이돌까지 한류를 타다
일본에서 ‘겨울연가’가 방영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한국의 새로운 문화 콘텐츠 열풍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엔하이픈, 도쿄에서 5만 명 동원

2025년 7월 6일, 엔하이픈이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 제공: Belift Lab)
에디터의 말: 한일 대중문화 관계는 2003년 NHK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국민적 인기를 끌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일본 대중문화를 너무 많이 받아들인다고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후, 오히려 한국이 일본에 문화 콘텐츠를 수출하는 형국이 됐다. 그리고 일본에서 한류가 주류에 오르는 한편, 한편으로는 혐한의 그림자도 존재한다.
7월 6일, 다국적 K-팝 그룹 엔하이픈이 ‘Walk the Line’ 월드투어의 일환으로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 올랐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 우산의 물결이 피어났다. 기온은 35도를 넘겼지만, 관객들은 아스팔트 위를 달구는 열기 속에서 네 시간 이상 우산을 펼쳐 들고 줄을 섰다.
“엔하이픈 데뷔 때부터 팬이었어요. 노래도 멋지고 멤버들도 잘생겼죠. 끈기 있게 활동하는 모습도 좋아요.” 20대 엔진(엔하이픈 팬) 소노코는 습한 날씨 속에서 힘차게 부채질하며 떨리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공연 보러 가려면 티켓 값도 비싸고 응원도구도 비싸지만, 충분히 투자할 만해요.”라고 소노코는 설명했다.
소노코의 친구 유이는 “엔하이픈뿐 아니라 TXT도 좋아해요. 패션감각도 좋고, 일본 그룹보다 춤과 노래 모두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틀째 이어진 이번 공연에는 5만 명의 팬들이 경기장 좌석과 필드를 가득 채웠다. ‘Brought the Heat Back’, ‘Fever’ 등 히트곡으로 시작해 눈부신 퍼포먼스가 열기를 더했다. 거대한 워터캐논이 관객을 적시고,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았다.
멤버 니키는 “엔진 여러분이 바로 우리의 에너지 원천이에요!”라고 외쳤고, 리더 정원은 “우리 앞길이 아무리 험해도 함께 꽃길로 만들어나가요”라며 팬들의 마음을 녹였다.
팬들은 K-팝 공연의 필수 요소인 떼창 응원으로 호응했다.

2025년 7월 6일, 엔하이픈 팬들이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 입장을 기다리며 멤버들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홍석재 기자/한겨레)
엔하이픈은 입증된 티켓파워를 자랑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일본 오사카 쿄세라돔 등지 세 차례 공연에서 19만 명을 끌어모았다.
이번 콘서트로 엔하이픈은 데뷔 4년 7개월 만에 일본 대형 스타디움에서 단독 공연을 연 최연소 해외 그룹 기록을 세웠다.
Belift Lab 관계자는 “일본에서 수만 석 규모의 스타디움 단독 콘서트는 탄탄한 팬덤의 존재를 보여준다. 단순 인기를 넘어 브랜드파워를 갖춘 K-팝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7월 6일의 공연은 현재 일본에서 K-팝이 얼마나 인기가 높은지 보여준다.
K-팝과 한류, 일본 문화 주류로 자리잡다
K-팝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 주류 문화의 일부다. 예를 들어 트와이스, 세븐틴, 스트레이키즈, 아이브, 르세라핌 등은 NHK의 연말 ‘홍백가합전’에 고정 출연한다.
2024년 6월에는 뉴진스가 (현재 소속사 하이브와 분쟁 중임) 데뷔 23개월 만에 도쿄돔 공연을 성사시키며 일본과 한국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제 K-팝의 인기는 버추얼 아이돌로까지 확장됐다.
한국 버추얼 그룹 플레이브는 데뷔 일본 싱글 ‘카쿠렌보(숨바꼭질)’로 올해 일본 오리콘·빌보드재팬 등 4개 메이저 차트 1위를 석권, 올해 일본에서 해외 가수·그룹 중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2025년 6월 29일, 도쿄 시부야 거리에 한국 버추얼 K-팝 그룹 플레이브의 광고 배너가 걸려 있다. (이정국 기자/한겨레)
K-팝 열기 덕분에 한국 음악산업의 일본 수출액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21년 3억1천만 달러, 2022년 3억6천만 달러, 2023년 4억2천9백만 달러로 성장세다.
음악 넘어 드라마까지 진출…한일 합작·리메이크도 활발
음악뿐 아니라 한국 드라마 제작진과 배우들도 일본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일본판 리메이크나 한일 합작작품도 늘고, 한국식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도 일본 내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본 연속극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일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6월 27일 공개된 뒤 빠르게 인기 1위에 올랐다. 이 작품은 한국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일본판 리메이크다. 원작을 바탕으로 같은 제목의 한국 드라마가 지난해 1월 tvN에서 방영된 바 있다.
두 드라마 모두 한국-일본 합작이란 점에서 주목받는다. 연출은 ‘비밀의 숲’, ‘더 글로리’를 만든 안길호 PD가 맡았고, 스튜디오드래곤 손자영·CJ ENM 글로벌콘텐츠 총괄 이상화가 총괄제작했다.
올 1월 방영된 일본 드라마 ‘사랑은 개에게’ 역시 스튜디오드래곤과 일본 TBS가 함께 기획·제작한 한일 합작품으로, 한국 배우 나인우·한지은이 출연했다.
‘수상한 파트너’(SBS), ‘괴물’ 등 한국 드라마를 일본판 리메이크로 선보이는 경우도 늘었다.
스튜디오드래곤 관계자는 “K-드라마가 전 세계적 히트를 이어가면서 일본 업계도 한국식 제작 시스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드라마 전문 제작사를 아우르는 생태계를 확장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방송국이 제작을 주도하는 전통적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3년간 이어진 한류…시장의 변화
일본에서 유행하는 문화 ‘한류’는 23년을 이어왔다. 2002년 ‘겨울연가’ KBS 드라마가